[기후위기시대] ㊷ 녹색당 주최 폭염 정책 세미나

기후위기로 극단적 날씨가 잦아지면서 온열질환 등 폭염에 희생되는 취약계층도 늘어나고 있다. 녹색당 정책위원회는 지난 10일 서울시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폭염 정책 토론회’를 열고 건설노동자, 노숙인, 이주민, 쪽방주민 등 사회적 약자 보호 대책을 촉구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지현영(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전재희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노동안전보건실장, 정동헌 민주노총 쿠팡물류센터지회 동탄분회장,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김이찬 지구인의정류장 상임활동가, 하상목 전 응급의료센터 간호사, 이치선 녹색당 정책위원장 등이 발제자로 참여했다. 청중 40여 명이 3시간가량 진행된 토론회에 함께 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덮치는 무더위와 물난리

김찬휘 녹색당 공동대표는 토론에 앞서 인사말을 통해 지난 9일 서울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서 발달장애인 가족이 물난리로 숨진 사고를 언급하며 “(폭우·폭염 등으로 나타나는) 기후위기는 불평등의 구조와 닮아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 토론회가 현장에서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함께 대안을 찾아가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지난 10일 녹색당이 주최한 폭염 정책 토론회에서 김찬휘 녹색당 공동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유지인 기자
지난 10일 녹색당이 주최한 폭염 정책 토론회에서 김찬휘 녹색당 공동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유지인 기자

토론회 1부 발제를 맡은 지현영 변호사는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기후위기와 인권’ 실태조사 결과 응답자 1500명 가운데 93.7%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기후변화 체감 계기는 ‘폭염 강도 및 일수 증가’가 약 40%로 가장 많았다고 소개했다. 지 변호사는 “고령화, 1인가구 증가, 소득 양극화 등 사회경제구조 변화에 적응 능력이 낮은 약자에게 폭염 위험이 집중될 수 있다”며 대책을 촉구했다. 그는 미국 시카고시가 1995년 7월 무더위로 한 달 동안 700여 명이 사망하는 사태를 겪은 후 폭염에 고립된 노인을 추적해 연락하는 시스템을 개발한 것을 모범사례로 제시했다. 그는 특히 중앙정부 중심의 하향식 폭염 대책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지방자치단체 중심의 현장 모니터링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토론회 2부에서 전재희 실장은 “폭염은 건설노동자를 사망 재해로 몰아 넣는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여름철 폭염으로 숨진 노동자 29명 중 20명이 건설현장에서 나왔다. 전 실장은 시간에 쫓기는 작업 환경, 부족한 휴식시간 및 편의시설 등을 취약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건설현장에서) 휴게실, 화장실의 개수와 크기, 위치에 대한 규정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며 “폭염 대책이 공염불이 되지 않도록 이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동헌 분회장은 “물류센터 구조상 환기와 환풍에 취약한 구조”라며 쿠팡 물류센터의 평균온도가 7월 기준 섭씨 33도, 평균습도는 60~70%에 달한다고 말했다. 건축법상 창고에 해당하는 물류센터 건물은 단열이 안 돼 폭염에 취약하고, 택배 물건과 선반에 둘러싸여 환풍이나 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회사가 선풍기, 에어 서큘레이터, 얼음물, 아이스크림 등을 제공하지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에어컨 설치, 유급 휴게시간 및 휴게공간 확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폭염 상황에서 취약계층이 겪는 위험을 설명하는 지현영 변호사, 전재희 실장, 정동헌 분회장. 유지인 기자
폭염 상황에서 취약계층이 겪는 위험을 설명하는 지현영 변호사, 전재희 실장, 정동헌 분회장. 유지인 기자

노숙인·쪽방주민·이주노동자에게 잔인한 여름

이동현 활동가는 “노숙인에게 폭염 나기는 ‘머물기 위한 사투’”라고 말했다. 주요 전철역을 관리하는 철도공사에서 그늘 같은 공간을 노숙인들이 이용할 수 없게 통제하고 있어 이들이 폭염 더위에 그대로 방치된다는 것이다. 서울역의 경우 2011년 노숙인 퇴거 조처 이후 노숙인들이 역사를 이용하기 어렵게 됐다. 서울 중구청은 코로나19 이후 노숙인들이 나무 그늘의 긴 의자에 누울 수 없도록 서울역 인근 나무와 화단을 없애기도 했다.

서울시는 ‘여름철 노숙인·쪽방주민 특별보호대책’으로 에어컨을 설치한 ‘무더위 쉼터’를 제공하고 있으나 이는 노숙인 시설 10개소, 전체 쪽방 주민의 6%에 해당하는 정도에 불과하다고 이 활동가는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식 당일 ‘노숙인·쪽방 주민을 위한 3대 지원방안’으로 건물별·층별 에어컨 150대 설치와 추가 전기요금 지원 등을 약속했지만 전체 쪽방촌 주민의 절반에 못 미치는 수량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 활동가는 “프로그램식 폭염 대책으로는 홈리스들이 겪는 고통을 해소할 수 없다”며 “(임대주택과 같은) 주거 대안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이찬 활동가는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영상을 청중에게 보여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국내 농촌에서 이주여성노동자가 겪는 노동권 침해, 성폭력 피해, 열악한 주거 환경 등을 고발한 내용이었다. 그는 비닐하우스 등 사람이 살기 힘든 곳을 임시주거시설로 인정하는 정부의 이주노동자 대책을 비판했다.

하상목 전 응급의료센터 근무 간호사는 “(우리나라가) 얼어 죽는 사회에서 쪄 죽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질병관리청이 지난 7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온열질환 응급실 사망자의 70% 이상이 70대 노인이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또 80대 노인이 고독사로 발견된 사례를 소개하며 “지역사회에서 커뮤니티를 통한 돌봄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책적 개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노숙인·쪽방주민·이주노동자·독거노인 등의 폭염 피해 실태를 설명하는 이동현 활동가, 김이찬 활동가, 하상목 전 간호사. 유지인 기자
노숙인·쪽방주민·이주노동자·독거노인 등의 폭염 피해 실태를 설명하는 이동현 활동가, 김이찬 활동가, 하상목 전 간호사. 유지인 기자

건설·물류 노동을 ‘고열작업’에 포함해야

이어진 라운드테이블에서 이치선 녹색당 정책위원장은 발제를 통해 정책 대안을 제시했다. 그는 우선 산업안전보건법 규칙을 개정해 건설 및 물류센터 노동자가 하는 일을 ‘고열작업’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는 사업주에게 고온으로부터 노동자의 건강장해를 예방할 의무를 '고열작업'과 '옥외장소'에서 하는 노동으로 정한다. 이때 '고열작업'은 작업의 장비나 수단 자체가 고열을 발생시킴으로써 작업장소가 고열의 환경에 있게 되는 경우로 제한한다. 실질적으로 무더위에 취약한 건설노동이나 물류센터 노동이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이와 함께 사업주에게 냉난방 등 온도조절, 온도계 설치, 휴게시설 설치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치선 녹색당 정책위원장이 취약계층을 폭염에서 보호하기 위한 정책 대안을 설명한 후 참석자들과 토론하고 있다. 유지인 기자
이치선 녹색당 정책위원장이 취약계층을 폭염에서 보호하기 위한 정책 대안을 설명한 후 참석자들과 토론하고 있다. 유지인 기자

이 위원장은 이어 폭염 상황에서 작업중지를 법제화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법 제70조에 명시된 ‘태풍·홍수 등 악천후’에 ‘폭염’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적절한 온도에서 노동할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최고온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쪽방촌 대책으로는 공공이 주도해 쪽방촌을 매입한 뒤 친환경 방식으로 리모델링 하는 ‘공공주도 주거 단지 그린리모델링 사업’과 주민조직을 강화해 공동체가 돌봄의 부담을 나누는 ‘서로 돌봄 시스템’ 구축 방안을 설명했다. 이주노동자에 관해서는 기숙사 시설기준을 제정하고 주거비 부담을 낮추는 방안을 제시했다.

[기후위기시대]

① 온실가스 주범 석탄발전소 ‘더 짓는 중’

② '기후우울' 떨치고 '어벤져스'로 나서다

③ 탄소세 부과로 ‘신호’ 줘야 기업 바뀐다

④ 노동·지역경제 배려 ‘정의로운 전환’을

⑤ "석탄발전소 짓는 한국, 리더 아닌 꼰대"

⑥ ‘그린워싱 대신 행동을’ 거센 녹색 함성

⑦ "SMR 등 원전은 기후위기 대안 못 돼"

⑧ “상용화 먼 핵융합, 탄소중립 도움 안 돼”

⑨ “기후위기 극복 의무를 헌법에 넣자”

⑩ 소형모듈원전(SMR) 상용화 가망 없다

⑪ “파이로프로세싱은 과학 아닌 소설”

⑫ 기후재난으로 원전 위험성 더 커진다

⑬ ‘기후 일자리’ ‘탄소국민배당’ 추진을

⑭ 고기 즐기는 너, 기후변화 공범 아니니

⑮ 청소년은 ‘미래’ 아닌 기후재난 ‘당사자’

⑯ 기후 미술관, ‘제로 웨이스트’로 가다

⑰ 쓰레기 줍다 보니 삶이 바뀌더라

⑱ “한국 공적금융이 에너지 전환 걸림돌”

⑲ ‘ESG 경영’ 뒤로 ‘기후행동 봉쇄 소송’

⑳ ‘국민이 처한 위험’ 알리려 당근 쏟았다

㉑ 나는 오늘 옷을 샀다, 기후위기를 샀다

㉒ 시민이 일어나 정부·기업을 움직이자

㉓ 탄소 줄이는 갯벌 메워 공항을 짓다니

㉔ 공장식 축산 줄이고 채식 늘려야 생존

㉕ 경작과 에너지 생산을 ‘하이브리드’로

㉖ 이재명 ‘재생에너지’, 윤석열 ‘원전’ 강조

㉗ 이재명·윤석열도 ‘기후대선’ 동참해야

㉘ ‘할머니가 지킬게, 초록지구’ 119 출동

㉙ 기후변화만큼 핵발전도 위험하다

㉚ ‘주차장 태양광’ 시급한데 조례로 막아

㉛ 채식 급식 확대, 환경교육과 병행 필요

㉜ 지구는 우리가 지킨다, 연구의 힘으로

㉝ 낡은 단독주택이 제로에너지 건물로 깜짝 변신

㉞ 개발에 밀린 무허가 정착민의 ‘생존 연료’

㉟ 난청·진폐 앓아도 떠날 곳 없는 노동자들

㊱ 실종된 ‘기후정치’를 찾습니다

㊲ ‘막장’에서 땀 흘린 이들의 희망은 어디에

㊳ 물 부족은 아프리카에서 끝나지 않는다

㊴ 돌고 돌아 사람 몸속에 쌓이는 플라스틱

㊵ 바이오연료, 전기차로 가는 징검다리 될까

㊶ 왕우렁이가 돕는 쌀농사, 도시농부도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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